9월 말, 한국일보 보도에서 눈에 띄는 통계가 나왔습니다. 가정폭력 피해자가 법원에 낸 개인정보 보호조치 신청 5건 중 1건은 기각된다는 것입니다. 2025년 하반기 기각률 22.2%, 2026년 상반기에도 18.9%. 그리고 임시조치 결정까지는 평균 11일 이상이 걸립니다. 쉽게 말해 "신청했지만 거절당하거나, 결정이 나올 때까지 보름 가까이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드물지 않다는 뜻입니다.
오늘은 이 빈틈을 어떻게 메울 수 있는지, 부산에서 이혼·가사 사건을 다루는 변호사로서 실제 상담에서 드리는 이야기를 풀어드리겠습니다.
1. '보호신청'이 뭔지부터 — 두 가지 제도
가정폭력 피해자가 법원에 요청할 수 있는 보호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 개인정보 보호조치: 이혼 소장이나 법원 서류에 내 주소·연락처가 상대방에게 전달되지 않도록 막는 신청입니다. 쉽게 말하면 "법원에 내 주소 대신 변호사 주소나 법원 사서함을 써 달라"는 요청입니다.
- 임시조치: 가해자에게 "피해자 집·직장에 접근하지 마라", "연락하지 마라"를 법원이 명령하는 제도입니다. 이것을 어기면 1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 벌금이 붙습니다.
그런데 이 두 신청 모두 법원이 기각할 수 있습니다. 그냥 "폭력을 당했다"는 사실만으로는 통과가 보장되지 않습니다.
2. 왜 기각될까요? — '위해 우려'의 구체적 기준이 문제
법원은 "생명 또는 신체에 대한 위해의 우려"가 있어야 보호조치를 인정합니다. 그런데 법원이 "어느 정도의 위험을 어떻게 증명해야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공개하지 않기 때문에, 신청서가 모호하게 작성되면 기각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상담에서 자주 만나는 상황은 이렇습니다. 피해자분이 "맞은 것은 맞는데 병원은 안 갔어요", "폭행보다 협박이 더 많았어요", "아이들 앞에서만 화를 냈어요"라고 하십니다. 이런 경우 신체 폭행에 관한 증거가 없어서 기각되는 게 아니라, 위협의 구체성을 보여주는 자료가 부족해서 기각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3. 신청 전에 챙겨야 할 자료
법원이 보호조치를 인정할 때 참고하는 것은 결국 "이 사람이 찾아오거나 연락하면 실제로 위험하다"는 구체성입니다. 아래 자료를 미리 모아두세요.
- 폭언·위협이 담긴 문자·카카오톡 대화 캡처 (날짜와 발신자 확인되게)
- 부상을 보여주는 사진, 병원 진단서 또는 진료기록
- 폭행 또는 협박을 목격한 사람의 진술 (이웃, 지인, 가족 포함)
- 경찰 신고 이력 (112 신고 접수 내역)
- "찾아가겠다", "아이를 데려가겠다" 같은 구체적 위협이 담긴 메시지
신청서 본문에도 단순히 "폭행을 당했습니다"보다 언제, 어떤 방식으로, 어떤 위협이 있었는지를 시간순으로 구체적으로 기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4. 결정까지 11일, 그 사이에 할 수 있는 것
임시조치 결정이 나오기까지 평균 11일 이상이 걸린다면, 그 기간 동안 빈손으로 기다려야 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 경찰 긴급임시조치: 경찰관이 현장에서 바로 내리는 조치입니다. 법원을 거치지 않고 즉시 가해자에게 퇴거·접근금지를 명할 수 있습니다. 위반 시 제재가 과태료에 그치지만, 즉각적인 분리 효과가 있습니다.
- 여성긴급전화 1366: 24시간 운영하며 임시 피해자 보호시설 연계, 동행 지원 등을 받을 수 있습니다.
- 가정폭력 피해자 보호시설 입소: 주소 노출 없이 일시적으로 안전한 공간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 스토킹처벌법 긴급응급조치: 가해자가 지속적으로 연락하거나 따라다닌다면 스토킹처벌법상 긴급응급조치도 함께 활용할 수 있습니다.
가정폭력 피해자를 위한 법적 수단은 하나의 신청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상황에 맞는 여러 제도를 동시에 활용하는 것이 빈틈을 최소화하는 방법입니다.
5. 일상에서 기억해두면 좋은 것
가정폭력은 '한 번의 사건'으로 끝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점점 강도가 세지거나, 잠잠한 시기가 지나면 다시 반복되는 패턴을 보입니다. 그래서 가정폭력이 의심되는 상황에서는 매번 기록을 남기는 습관이 중요합니다. 날짜, 내용, 그 직후 나눈 대화까지 짧게라도 메모해 두면 나중에 신청서를 작성할 때 훨씬 든든한 자료가 됩니다.
또 한 가지, 부산에서 이혼·가사 사건을 오래 다루면서 보면, 보호신청을 준비할 때 혼자서 처음 작성하는 경우보다 법률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작성한 경우에 구체성과 설득력이 확연히 달라집니다. 신청이 기각되면 상황이 오히려 더 어렵게 느껴지기 때문에, 처음 신청할 때 제대로 준비하는 것이 훨씬 낫습니다.
※ 본 칼럼은 한국일보 2026. 9. 27. 보도("정보 보호 신청 5건 중 1건은 기각…법원 '가정폭력 피해자 보호' 곳곳에 공백")를 바탕으로 일반적인 법률 정보 제공을 위해 작성하였습니다. 기사 내용의 직접 인용이 아닌 독자적 해설이며, 개별 사건의 결과는 사안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