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서 한 장 받아뒀는데 이게 효력이 있나요?" 부산에서 상담을 하다 보면 이 질문을 자주 받습니다. 반대로 "각서를 써 달라는데 써 줘도 되나요?"라고 물으시는 분도 많습니다. 두 질문의 답은 같은 곳에서 나옵니다. 각서는 제목이 아니라 내용으로 판단된다는 것입니다.
1. 각서·서약서·확약서 — 이름은 달라도 같습니다
법에는 '각서'라는 문서 종류가 따로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각서, 서약서, 확약서, 이행각서, 합의서 — 이름이 무엇이든 당사자 사이에 무엇을 하기로 약속한 내용이 담겨 있으면 계약입니다. 우리 민법은 계약의 형식을 원칙적으로 제한하지 않으므로, A4 한 장에 손으로 쓴 각서도 인쇄된 계약서와 효력에서 차이가 없습니다.
그래서 "각서니까 가벼운 것"이라는 생각은 위험합니다. 써 주는 쪽에서는 특히 그렇습니다. 사업장에서 "형식적인 것이니 그냥 사인하라"는 말을 듣고 서명한 문서가 나중에 그대로 청구의 근거가 되는 경우를 실무에서 봅니다.
2. 법원은 이런 문서를 어떻게 보나 — 처분문서의 증명력
각서처럼 권리의 발생·변경·소멸이라는 법률행위 자체가 적혀 있는 문서를 실무에서 처분문서라고 부릅니다. 여기에는 중요한 원칙이 따라옵니다.
문서가 진정하게 성립한 것으로 인정되면(즉 본인이 작성한 것이 맞다고 인정되면), 법원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 문서에 적힌 대로 법률행위가 있었다고 인정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사실은 그런 뜻이 아니었다"는 주장만으로는 뒤집기 어렵다는 뜻입니다.
이 원칙은 양날의 칼입니다. 받아둔 사람에게는 강력한 무기가 되고, 써 준 사람에게는 무거운 족쇄가 됩니다. 서명하기 전에 읽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3. 반드시 들어가야 하는 다섯 가지
양식을 그대로 베끼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아래가 빠지지 않았는지입니다.
| 항목 | 왜 필요한가 | 흔한 실수 |
|---|---|---|
| 당사자 특정 | 누구와 누구의 약속인지 | 이름만 적고 생년월일·주소를 빠뜨림 |
| 의무의 내용 | 무엇을 하기로 했는지 | "성실히 이행한다"처럼 막연한 표현 |
| 기한 | 언제까지 해야 하는지 | "조속히", "형편이 되는 대로" |
| 불이행 시 효과 | 못 지키면 어떻게 되는지 | 아예 없음 |
| 날짜·서명·날인 | 언제 누가 작성했는지 | 날짜 누락, 대필 |
특히 금액과 기한은 숫자로 적어야 합니다. "빌린 돈을 갚겠다"가 아니라 "2026년 3월 5일 빌린 금 오백만원(5,000,000원)을 2026년 12월 31일까지 갚겠다"로 씁니다. 금액은 아라비아 숫자와 한글을 함께 적으면 나중에 고쳐 쓰는 일을 막을 수 있습니다.
4. ★ 각서만으로는 압류를 못 합니다
여기가 가장 많이 오해하시는 지점입니다. 아무리 잘 쓴 각서를 손에 쥐고 있어도, 그것만으로 상대방의 통장이나 부동산에 압류를 걸 수는 없습니다.
강제집행을 하려면 법이 정한 집행권원이 있어야 합니다. 확정판결, 지급명령, 법원의 조정조서 같은 것들입니다. 사인 간에 주고받은 각서는 여기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각서는 소송에서 이기기 위한 증거이지 집행의 근거가 아닙니다. 순서는 이렇게 됩니다.
- 각서를 근거로 지급명령을 신청하거나 소송을 제기합니다.
- 확정되면 그것이 집행권원이 됩니다.
- 그다음에 비로소 압류로 넘어갑니다.
잘 쓰인 각서가 있으면 1단계가 훨씬 수월해집니다. 다툼이 적으면 지급명령이 그대로 확정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러나 단계를 건너뛸 수는 없습니다.
5. 처음부터 집행까지 생각한다면 — 공정증서
돈을 빌려주는 상황처럼 처음부터 회수까지 염두에 둔다면, 각서 대신 공증인이 작성하는 공정증서를 검토할 수 있습니다. 금전 지급을 목적으로 하는 공정증서에 채무자가 강제집행을 승낙한다는 취지가 적혀 있으면, 그 자체가 집행권원이 되어 소송 없이 바로 집행으로 넘어갈 수 있습니다.
| 구분 | 각서·차용증 | 공정증서 |
|---|---|---|
| 만드는 곳 | 당사자끼리 | 공증사무소(공증인) |
| 비용 | 없음 | 금액에 따른 수수료 |
| 소송 없이 압류 | 불가 | 집행승낙 문구가 있으면 가능 |
| 이럴 때 | 금액이 작고 신뢰가 있을 때 | 금액이 크거나 회수가 걱정될 때 |
공증에는 수수료가 들지만, 나중에 소송으로 들어갈 시간과 비용을 생각하면 금액이 큰 거래에서는 오히려 저렴할 수 있습니다. 판단 기준은 "이 사람이 안 갚으면 내가 소송까지 할 것인가"입니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공정증서가 낫습니다.
6. 효력이 부정될 수 있는 경우
각서가 늘 그대로 인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다음과 같은 사정이 있으면 다툴 여지가 생깁니다.
- 강박에 의한 작성. 협박을 당해 어쩔 수 없이 썼다면 취소를 주장할 수 있습니다. 다만 강박이 있었다는 점은 주장하는 쪽이 증명해야 하므로, 당시의 문자·녹음이 남아 있는지가 중요합니다.
- 사회질서에 반하는 내용. 예컨대 "이혼하면 자녀를 다시는 만나지 않겠다"처럼 법이 보호하는 권리를 포기시키는 약정은 효력이 인정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 내용이 불분명한 경우. 무엇을 얼마나 해야 하는지 특정되지 않으면 그대로 집행하기 어렵습니다.
- 작성 사실 자체를 다투는 경우. "내가 쓴 게 아니다"라고 나오면 진정성립을 증명해야 합니다.
7. 부산에서 본 사례 — 같은 각서, 다른 결과
부산에서 상담하다 보면 각서 때문에 결과가 갈리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한 사례에서는 지인 사이에 빌려준 돈을 두고 "형편 되는 대로 갚겠습니다"라고만 적힌 각서를 들고 오셨습니다. 상대방은 "아직 형편이 안 됐다"고 주장했고, 기한이 특정되지 않아 이행기가 언제 도래했는지부터 다투게 됐습니다. 반대로 다른 사건에서는 금액·변제일·불이행 시 지연이자까지 한 줄씩 적힌 각서가 있었고, 상대방이 서명 사실을 인정하면서 지급명령이 이의 없이 확정됐습니다.
두 문서의 차이는 길이가 아니라 숫자와 날짜가 적혀 있었는지였습니다. 각서는 짧아도 됩니다. 다만 읽는 사람이 다르게 해석할 여지가 없어야 합니다. 차용증이나 내용증명 같은 채권 관련 무료 양식은 저희 사무소가 운영하는 받아드림(badadrim.com)에서 내려받으실 수 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상대가 각서를 써 놓고도 버틴다면 그다음 순서는 내용증명과 지급명령을 다룬 칼럼에 정리해 두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덧붙이겠습니다. 서명을 요구받은 쪽이라면, 그 자리에서 서명하지 않아도 됩니다. "하루만 보고 연락드리겠다"고 말할 권리가 있습니다. 실무에서 가장 많이 후회하시는 순간은 내용을 다 읽지 못한 채 분위기에 밀려 사인한 경우입니다.
※ 근거: 민법 제105조·제103조(법률행위의 효력과 사회질서), 제110조(사기·강박에 의한 의사표시), 민사소송법(문서의 증거력), 민사집행법 제56조(집행권원의 종류), 공증인법(공정증서의 작성), 대한민국 법원 전자소송(ecfs.scourt.go.kr). 본 칼럼은 일반적인 법률 정보 제공을 위한 것으로, 구체적 사건에 대한 법률 자문이 아닙니다. 개별 사안의 결과는 사실관계와 증거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 상담 문의: 전화 1660-4452 / 블로그 blog.naver.com/lawchungsong / 사이트 chang-hee.kim